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횡성 전투 (문단 편집) == 기타 == 리지웨이는 이후 자서전에서 횡성 전투를 두고 ‘한국인의 유전자에 중국인에 대한 경외심이 깃들어 있는 게 아닐까 생각된다’ 라고 했는데, 이는 그 때까지 한국군의 무능한 모습을 너무 많이 봐서 저리 써놨다고 한다. 오늘날 시점으로 본다면 유전자 운운한 건 [[인종차별]]적 발언이라고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당시는 잘하든 못하든 거기서 어떤 인종적 특징이 있다고 여기던 시대였음은 감안할 필요가 있다. 횡성 전투를 두고 미군이 일부러 한국군을 돌출시켜서 미끼로 쓴 건 아닌가 하고 의혹을 제기하는 시선도 있다. 8사단 측에서 적정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로 그냥 진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건의하였지만 미 10군단장인 [[에드워드 알몬드]]가 그냥 씹고 계속 진격하라고 말했다는 증언도 있고, 횡성에서 한국군이 궤멸되었지만 그렇게 생긴 빈틈으로 파고든 중공군을 결국 지평리에서 저지하면서 최종적으로는 중공군 3차 공세를 저지시켰기 때문. 한데 중공군의 반격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 치고는 횡성에서 8사단의 준비 태세 자체가 꽤나 졸렬했다. 거기다 당시 상황에서 전방으로 돌출된 부대는 횡성 일대의 한국군만이 아니라 지평리 일대의 미군도 마찬가지였으며, 중공군 수뇌부도 지평리를 노릴지 횡성을 노릴지 고심하다 횡성을 선택했다. 즉 한국군만 돌출시켜 미끼로 썼다고 보기엔 지평리에 돌출된 미군 때문에 무리가 있는 것. 퇴각로를 사수하여 한국군과 미군의 전멸을 막아낸 네덜란드군의 활약을 기념하여 네덜란드군참전기념비가 [[강원도]] [[횡성군]] [[우천면]]의 횡성참전기념공원에 세워져 있다. [[분류:6.25 전쟁/전투]][[분류:1951년 전투]][[분류:제8기동사단]][[분류:횡성군의 사건사고]][[분류:한국-네덜란드 관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